정몽주는 고려가 원의 지배 하에 있었던 1337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이는 1360년 문과 장원급제로 이어졌습니다. 중앙정계에 진출한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뛰어난 학자적 소양을 바탕으로 성균관에서 강의를 하며 학문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고려 내에서 정몽주의 영향력은 계속 커졌으며, 뛰어난 외교능력을 바탕으로 고려 말 대외교섭을 이끌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전통문화포털
정도전의 출생 연도는 정몽주보다 5년 늦은 1342년으로 추정됩니다. 정도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학문을 좋아하고 비범하였으며 1362년 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중원에서는 원과 명이 세력을 다투고 고려에서는 공민왕이 시해되는 등의 혼란 속에서 정도전은 친원배명 정책을 반대하다가 1375년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383년에 이성계를 만나 그의 참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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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정몽주와 정도전을 가깝게 이어 주었습니다. 둘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고려의 개혁을 밀어붙였지만 권문세족의 반발로 인해 좌절하게 됩니다. 둘 다 친원 정책에 반기를 들다가 유배를 떠나게 되었는데 정몽주는 비교적 빠르게 복귀하게 되지만 정도전은 긴 시간을 유배지에게 보내게 됩니다. 유배생활 동안 백성들의 삶을 관찰하며 사상적 전환을 이루게 된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해 정계에 복귀한 이후 정몽주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성리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던 정몽주와 새로운 왕조를 세워 철저한 유교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도전은 치열하게 갈등하였지만 위화도 회군을 거쳐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즉위까지 줄곧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둘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대세는 이성계를 앞세운 정도전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뜻을 지켰던 정몽주는 조선 건국 직전인 1392년 5월, 결국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의 명을 받은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당하게 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혼란의 고려 말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정몽주와 정도전 중 누구와 의견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요?